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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인물

애정 행위의 어두운 그림자 "매독" (1)

혁신의아이콘 2021. 12. 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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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행위의 어두운 그림자 "매독" (1)

적국의 수도를 점령한 프랑스 병사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행운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행운이었을까?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던 나폴리 현지 방어군은 결국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당시 그 현장을 목격했던 한 증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들의 진지 인근에 둥지를 틀고 있던 윤락녀들과 외모가 출중한 여성들을 폭력을 동원해서 프랑스 군대 쪽으로 내몰았다.

 

쫓겨난 여성들의 외모에 매료된 프랑스군은 그 여인들을 자신들의 진지로 끌어들였다. 그 증인은 훗날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해부학자이자 의사가 될 가브리엘레 팔로피오 Gabriele Falloppio 2 의 아버지였다. 가브리엘레 팔로피오는 평생 동안 유행성 질병과 그 질병의 징후 및 후유증을 연구하며 보냈다. 팔로피오의 아버지가 목격한 장면은 고전적인 생물학전이라 할 수 있겠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매독"

1495년 2월,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샤를 8세의 프랑스군은 나폴리에 입성한다. 그들은 나폴리군이 자신들에게 그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폴리군이 여인들을 자신들의 진영에서 쫓아내 프랑스군으로 보낸 이유는 식량 부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프랑스 군대를 오래도록 괴롭힐 방도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의 건강에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프랑스 병사들은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프랑스군이 나폴리에 입성한지 몇 개월 뒤인 1495년 7월, 포르노보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프랑스군 측 의무병들은 병사들의 상처 부위를 처치하다가 끔찍한 사실을 발견한다. 프랑스 병사들의 몸이 고름으로 뒤덮이거나 기타 피부 질환이 발생한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마치 한센병을 떠올리게 만드는 증상이었다.

 

증세를 보인 병사들 중 몇몇은 사망했고, 살아남은 이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프랑스 병사들의 수는 가파르게 감소했고, 프랑스군은 결국 퇴각을 결정했다. 새로운 질병은 약 150년 전 발발했던 흑사병을 비롯한 각종 유행병들을 연상시켰고,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린 병사들의 심신은 급속도로 지쳐갔다. 그런데 프랑스군을 괴롭힌 새로운 질병은 페스트나 한센병 혹은 천연두와는 다른 한 가지 징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최초 감염 부위였다. 병변이 환자들의 성기 주변에서 가장 먼저 관찰된 것이었다. 의무병들은 해당 병사들과 관계를 가진 여인들의 성기를 검사한 후,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 질병임을 확신했다.

 

사람들은 새로이 등장한 그 질병을 악성 천연두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고약한 질병은 유럽 대륙 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흑사병과도 닮은 점이 많았다. 훗날 매독syphilis이라고 불리게 된 이 질병은 당시 교통수단이 이동하는 것과 동일한 속도로, 나아가 당시 진군하는 군대의 속도와 유사한 속도로 퍼졌다. 이번 질병 전파의 주역은 샤를 8세의 군대였다. 프랑스에서는 해당 질병을 나폴리 질병'이라 불렀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는 나폴리가 매독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독일어권 국가, 나아가 영국에서는 그 질병을 '프랑스 질병'이라 불렀다. 그런가 하면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질병'이라 불렀고,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질병'이라 불렀다. 그 이름들을 보면 매독의 진행 경로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나아가 문제가 발생하면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국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던 당시의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이탈리아 전장에서 사투를 벌인 용병들은 대부분 여러 나라에서 모집한 농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탈리아군와 프랑스군 모두에 스페인 출신 용병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관행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매독과 관련된 한 가지 중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비록 그간 논란이 분분하긴 했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이 매독이 스페인 용병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는 이유다.

 

유럽을 뒤흔든 끔찍한 질병, 즉 매독은 세계사적 사건과도 연관이 깊다. 1493년 3월, 콜럼버스가 니냐호와 핀타호 를 이끌고 신대륙에서 귀환했다. 당시 콜럼버스는 금과 향료의 나라인 '동양' 인도로 향하는 뱃길을 개척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동양'도 아니었고, 정확히 따지자면 '개척'이 아니라 '재개척'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약 500년 전, 북유럽 출신의 뱃사람들(바이킹)이이미 북아메리카 대륙을 밟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식민지로 삼고 정복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500년 전에 신대륙에 도착한 바이킹들은 이렇다 할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콜럼버스를 필두로 한 선원들이 스페인으로 귀환했을 무렵에 활약했던 두 명의 의사 페르난데즈 데 오비에도Fernandez de Oviedo 와 뤼 디아즈 데 이슬라는 귀환한 뱃사람들에게서 매우 특이한 형태의 질병을 발견했다.

 

두 의사는 그 질병이 '인디오'라 불리던 신대륙의 원주민들과의 접촉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며, “지금까지 볼 수 없었고, 어디에도 묘사된 바 없는 질병”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귀환한 뱃사람들로부터 신대륙의 원주민들에게서 해당 질환이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이고 치료제도 있는 것 같다는 진술을 들은 바 있다고도 전했다. 감염된 환자들 중에는 스페인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 팔로스 데 라 프론테라의 명문가 출신 마르틴 알론조 핀존도 있었다. 핀타 호의 선장이었던 핀존은 형제들과 함께 역사적 대탐험에 나섰지만, 본국으로 귀환할 때쯤에는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들것에 실려 배에서 내려야 할 만큼 쇠약해져 있었고, 귀환한 지 2주 만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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